이든 칼럼

모든 말이 ‘~해라’로 끝나는 사람들

“이제 향수 좀 그만 사요.”

지인 한 분이 새로 산 향수 이야기를 꺼내자, 함께 있던 분이 건넨 첫마디였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분의 말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습니다.

  • “오는 길에 담배 좀 사다 줘요.”
  • “얼른 결혼해야지.”
  • “운동 좀 해.”
  • “그만 좀 먹어.”

아무도 물어본 적도, 부탁한 적도 없는데 남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 대화의 대부분이 ‘~해라’로 끝납니다. 듣고 있으면 먼저 ‘저분은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됩니다.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야 괜찮지만, 마음이 여리고 자존감이 약한 분들은 이런 말에 쉽게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서서 손가락질하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과 지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두 사람, 문 앞에서 그 모습을 보고 돌아서는 새 회원을 그린 만화풍 삽화
“그건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말하는 사람만 즐거운 자리, 처음 온 사람은 조용히 돌아섭니다.

시키는 순간, 말한 사람이 힘을 얻습니다

왜 이렇게 시키는 말이 많을까요. 하버드, 듀크, 인시아드 등의 연구진이 2018년에 발표한 연구에서, 사람들은 남에게 조언을 하고 나면 스스로 더 힘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상대가 부탁하지 않은 조언이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소 힘을 원하는 마음이 큰 사람일수록 조언을 더 자주, 더 길게 했습니다. 연구진은 조언을 “힘을 얻는 은근한 통로”라고 불렀습니다. Schaerer et al. (2018)

흥미로운 점은 이 기분이 상대가 조언을 따를 것이라고 여길 때만 생겼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거절하면 그 기분은 사라졌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진(Blunden 외, 2019)의 연구에서도, 자기 조언이 무시당한 사람은 상대에게 불쾌감을 느끼고 상대를 덜 따뜻하고 덜 유능한 사람으로 낮춰 보았습니다. “그만 사요”라고 했는데 향수를 또 사 오면 유독 언짢아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상대를 걱정해서라기보다,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Harvard Business School

상대를 위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위에 서기 위한 말입니다.

진짜 걱정은 먼저 묻고, 상대가 따르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묻지 않고 시키기만 하는 말은 상대가 아니라 말한 사람의 기분을 챙깁니다.

“널 위해서”라는 변명

이런 분들에게 왜 그렇게 말하느냐고 하면 대개 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상대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 “널 위해서 한 얘긴데 왜 그렇게 받아들여?” 하며 오히려 서운해합니다. 상대를 위한다는 말이 자기 말을 변명하는 방패가 되는 셈입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Alice Miller)는 책 『For Your Own Good』(1980)에서, 상대를 통제하고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이 “다 너를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온 방식을 짚었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다룬 책이지만,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강요를 걱정처럼 포장하는 모습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Alice Miller, For Your Own Good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 연구진(1990)은 같은 갈등을 겪은 사람들에게 각자의 입장에서 그 일을 적게 했습니다. 상처를 준 쪽은 자기 행동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별일 아니었다고 적었습니다. 상처를 받은 쪽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오래 마음에 남았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말을 두고도 말한 사람은 ‘좋은 뜻이었다’고 기억하고, 들은 사람은 상처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Baumeister et al. (1990)

하지만 정말 상대를 위한 말이라면 먼저 묻습니다. “요즘 어때요?”, “이번 향수는 어떤 향이에요?” 상대의 사정을 듣고 나서야 할 말이 생깁니다. 반면 ‘~해라’만 하는 분들은 묻지 않습니다. 상대가 왜 그 향수를 골랐는지, 왜 아직 결혼을 안 했는지, 왜 오늘 좀 더 먹고 싶은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실제로는 상대방에게 관심조차 없습니다.

스스로 위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능력 자체가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등의 연구진(Galinsky 외, 2006)이 사람들에게 자기 이마에 알파벳 E를 써 보게 했더니, 힘을 가졌다고 느끼게 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약 세 배 더 많이 마주 선 사람이 보기에 뒤집힌 E를 썼습니다. 자기 쪽에서만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의 얼굴 표정에서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감정을 읽는 데에서도 실수가 더 많았습니다. 정작 본인은 상대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Kellogg Insight

친한 척, 농담 속에 숨은 서열

“오는 길에 담배 좀 사다 줘요”는 조언이 아니라 심부름입니다. 하지만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이분들은 친하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친한 사이라면 거꾸로 부탁받는 일도 있어야 하는데, 이분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시키는 사람과 시킴을 받는 사람이 늘 정해져 있습니다. 친함이라는 가면 뒤에 서열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에릭 번(Eric Berne)의 교류분석에서는 사람의 말투를 부모, 어른, 아이 세 가지로 나눕니다. 그중 ‘비판적 부모’는 “~해야지”, “~하지 마”처럼 명령하고 평가하는 말투입니다. 어른과 어른이 나누는 대화라면 “그 향수 어때요?”라고 물었을 텐데, 이분들은 처음부터 부모의 자리에 앉아 상대를 가르칠 아이로 대합니다. Simply Psychology

스스로 위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남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스탠퍼드와 노스웨스턴 등의 연구진(Gruenfeld 외, 2008)은 여섯 번의 실험에서, 힘을 가졌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나에게 쓸모가 있는가’로 판단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상대의 다른 면은 덜 보고, 내 목적에 도움이 되는지만 봅니다. 상대의 시간과 수고를 묻지도 않고 쓰는 심부름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Stanford GSB

‘나는 남보다 더 대접받아야 한다’는 마음, 심리학에서 말하는 특권의식(psychological entitlement)도 함께 보입니다. 이 성향을 측정한 연구(Campbell 외, 2004)에서 특권의식이 높은 사람은 남의 입장을 헤아리는 능력이 낮았고, 상대를 덜 존중했으며, 비판을 받으면 더 공격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심부름을 거절하거나 조언을 따르지 않았을 때 유독 언짢아하고, 지적을 받으면 오히려 성을 내는 모습과 겹칩니다. Campbell et al. (2004)

술자리 말버릇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산할 때가 되면 “니가 쏴라~”, 누가 지갑을 꺼내면 “니가 쏘냐?” 하고 농담처럼 던집니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누가 돈을 낼지를 자기가 정한다는 점에서 이것도 이래라저래라입니다.

더치페이를 할 때도 비슷합니다. 술값을 한 사람이 먼저 카드로 계산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각자 몫을 그 사람에게 계좌로 보내 주기로 합니다. 다들 바로 입금하는데, 이분은 먼저 계산한 사람에게 “10개월 할부로 해줘”라고 합니다. 물론 웃자고 하는 말이고, 실제로 돈을 늦게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듣는 사람은 묘하게 불편합니다. 왜 하필 이런 농담일까요.

심리학에서는 남에게 신세를 진 상태, 이른바 ‘빚진 마음’을 불편한 감정으로 봅니다. 받은 것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더치페이 자리에서 먼저 계산한 사람은 잠시나마 다른 사람들의 돈을 대신 내 준 사람이고, 나머지는 갚아야 하는 쪽이 됩니다. “10개월 할부로 해줘”는 그 갚아야 하는 자리에서 ‘갚는 방식은 내가 정하겠다’고 말하는 농담입니다. 잠깐이라도 아래에 서는 게 불편한 사람에게는, 빚진 쪽에서도 조건을 거는 말이 편한 것입니다. 신세 진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판을 쥔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농담에 묻어 나옵니다. Frontiers in Psychology

“농담인데 왜 그래”라고 하겠지만, 농담은 말한 사람에게만 가볍습니다. 크루거(Justin Kruger) 연구진(2006)은 놀린 사람과 놀림을 받은 사람에게 같은 농담을 평가하게 했습니다. 놀린 쪽은 자기 농담을 더 재미있고 덜 상처 되는 말로 여겼고, 들은 쪽은 더 짓궂고 불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말한 사람은 자기 속마음이 좋은 뜻이었다는 걸 알지만, 듣는 사람은 그 속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구 제목부터가 “‘농담이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였습니다. Kruger et al. (2006)

심리학에서는 놀림을 장난과 공격 사이를 오가는 말로 봅니다. 웃음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상대는 불편해도 정색하기 어렵고, 상대가 웃어넘기는 순간 말한 사람은 ‘나는 이 정도 말은 해도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버클리 대학교 연구진(Keltner 외, 1998)이 대학 사교 모임의 농담을 살펴보니, 서열이 낮은 회원들은 상대의 체면을 살려 주는 부드러운 농담을 했고, 서열이 높은 회원일수록 그런 배려가 적었습니다. 스스로 서열이 높다고 의식하지는 않더라도, 말하는 방식은 이미 자기가 위에 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Keltner et al. (1998)

내 취향을 건드리면 ‘하지 마라’

이런 분들은 남의 선택에는 쉽게 ‘~해라’를 붙이면서, 자기 선택에 대한 이야기에는 유독 예민합니다. 술자리에서 누군가 “희석식 소주는 좋은 술이 아니다”라고 평가하자, 이분은 “내가 먹는 소주를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받아쳤습니다. 술에 대한 평가였을 뿐인데, 돌아온 것은 또 ‘~하지 마라’였습니다.

일리노이 대학교 등의 연구진(Cheng, White & Chaplin, 2012)은 어떤 브랜드를 자기 일부처럼 여기는 사람은 그 브랜드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들은 나쁜 정보를 보고도 평가를 바꾸지 않고 브랜드를 자기처럼 지키려 했습니다. 연구진은 이것이 결국 브랜드보다 자기 자신에 관한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내가 마시는 소주에 대한 평가가 곧 나에 대한 평가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ScienceDaily

여기에 늘 위에서 말하는 습관이 더해지면, 설명 대신 명령이 먼저 나옵니다. “나는 이 소주가 입에 맞더라” 하고 말하면 그만인데, 상대의 입을 막는 ‘~하지 마라’를 고릅니다. 남에게는 쉽게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남의 말 한마디는 견디지 못하는 셈입니다.

정신을 갉아먹고, 새 사람을 밀어냅니다

한마디 한마디는 사소해 보입니다. 향수 한 병, 담배 한 갑, 밥 한 숟가락의 문제니까요. 하지만 내 일을 내가 정하지 못하게 하는 말을 자꾸 듣다 보면 마음이 조금씩 닳아 없어집니다. 특히 자존감이 약한 사람일수록 이런 말을 ‘내가 뭔가 부족해서 그렇구나’ 하고 자기 탓으로 받아들입니다.

2011년 성격·사회심리학 학술지(PSPB)에 실린 연구는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코치가 통제적으로 말할수록 선수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느낌을 잃어 간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자율성이 꺾인 선수들에게서는 번아웃, 우울감, 부정적인 감정, 몸의 이상 증상까지 함께 나타났습니다. 일상에서 매번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우리도 같은 일을 조금씩 겪고 있는 셈입니다. Bartholomew et al. (2011)

동호회든 친목 모임이든, 이런 분이 한 분 있으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새로 온 사람입니다. 오래된 회원들은 “저 사람 원래 저래” 하고 웃어넘기는 법을 압니다. 하지만 처음 온 사람은 그 말이 이 모임의 분위기라고 받아들입니다. 첫 자리에서 “그건 그렇게 하는 거 아니에요”, “처음 왔으면 이것부터 해요”, “그 장비로는 안 돼요, 이걸로 바꿔요” 같은 말을 들은 사람이 다음 모임에 다시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동호회 생활을 다룬 한 기사에서도 함께 운동하는 사람에게 잔소리하는 회원을 대표적인 ‘진상 회원’으로 꼽았습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이것도 연구로 확인된 이야기입니다. 위키백과를 분석한 미네소타 대학교 연구진(Halfaker 외, 2013)은 신규 참여자가 처음 남긴 기여가 차갑게 거절당할수록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고, 이것이 참여자 수가 줄어든 큰 원인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비슷합니다. 새 얼굴이 들어오지 못하는 모임은 결국 늘 같은 사람끼리 남다가 조용히 작아집니다. University of Minnesota

고쳐지지 않으니, 거리를 둡니다

그렇다면 조용히 이야기해 주면 어떨까요. “다른 분들에게 지적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삼가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정중하게 말해도 돌아오는 반응은 대개 비슷합니다. “나는 좋은 뜻으로 한 말인데 왜 그래?” 하며 오히려 성을 냅니다.

앞에서 본 연구들을 떠올리면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이분들은 자기 말을 ‘상대를 위한 좋은 뜻’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지적을 받으면 억울하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문제라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바뀔 이유도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성향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옆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이런 분들은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이런 분들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화를 낼 필요도, 설득할 필요도 없습니다. “네, 생각해 볼게요” 하고 웃으며 넘기되, 내 시간과 마음을 너무 많이 내어 주지 않으면 됩니다.

정말 상대를 아끼는 사람은 시키기 전에 먼저 묻습니다. “요즘 어때요?”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참고: Schaerer, Tost, Huang, Gino & Larrick (2018), Advice Giving: A Subtle Pathway to Power · Blunden 외 (2019), Seeker beware: The interpersonal costs of ignoring advice · Galinsky 외 (2006), Power and perspectives not taken · Cheng, White & Chaplin (2012), The effects of self-brand connections on responses to brand failure · Kruger, Gordon & Kuban (2006), Intentions in teasing: When “just kidding” just isn’t good enough · Keltner et al. (1998), Teasing in hierarchical and intimate relations · Bartholomew 외 (2011),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diminished functioning · Alice Miller (1980), For Your Own Good · Baumeister, Stillwell & Wotman (1990), Victim and perpetrator accounts of interpersonal conflict · Eric Berne, Transactional Analysis · Gruenfeld 외 (2008), Power and the objectification of social targets · Campbell 외 (2004), Psychological Entitlement ·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동호회 진상 회원 이야기 · Halfaker 외 (2013), The Rise and Decline of an Open Collaboration System

이든 칼럼은 직접 겪은 일에 관련 자료와 연구를 더해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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