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이야기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이야기

법당 종소리의 주인, 1,250년을 울린 신라의 종

소원법당에서 정각마다 울리는 범종, 그리고 마당 서쪽 종각의 십이지 종을 누르면 나는 소리는 모두 성덕대왕신종, 곧 에밀레종의 실제 소리예요. 국립경주박물관의 2025년 타음 조사 때 울린 종소리를 담았습니다. 1,250년 넘게 울려 온 그 종 이야기를 해 볼게요.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에 걸린 성덕대왕신종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의 성덕대왕신종. 종 아래 둥글게 파인 자리는 소리를 울려 주는 ‘명동’이에요. · 사진 Bernard Gagnon, CC0, 위키미디어 공용

한눈에 보기

공식 이름국보 성덕대왕신종 (옛 국보 제29호) · 봉덕사종,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러요
만든 때통일신라 혜공왕 7년, 771년 완성
크기·무게높이 3.66m, 입지름 2.27m, 두께 11~25cm, 무게 18.9톤
국보 지정1962년 12월 20일
계신 곳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종각 · 우리나라에 남은 가장 큰 종

할아버지를 기리는 종, 손자가 완성하다

신라 경덕왕은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려 큰 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삼국유사』에는 구리 12만 근을 들였다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경덕왕은 종을 다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그 아들 혜공왕이 771년에 마침내 완성해 봉덕사에 걸었어요. 할아버지를 기리는 종을 손자가 마무리한 셈입니다.

종 몸체에는 천여 자의 글이 새겨져 있어요. 첫머리는 “참된 도는 모양 너머에 있어 보아도 그 근원을 볼 수 없고, 큰 소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 울려 들어도 그 울림을 다 들을 수 없다”는 뜻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령한 종을 걸어 부처님의 둥근 소리(원음)를 깨닫게 한다는 거예요. 이 종을 ‘신종(神鍾)’, 곧 신령한 종이라 부르는 까닭입니다. 성덕왕의 공덕이 종소리처럼 백성에게 널리 퍼져 나라가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어요.

봉덕사가 물난리로 사라지자 종은 영묘사로, 다시 경주 봉황대 아래 종각으로 옮겨졌어요. 조선 시대에는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는 데도 쓰였다고 해요. 1915년 옛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고, 1975년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종에 새긴 아름다움

성덕대왕신종 전체 모습
종 전체 · 사진 Josep Panadero,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
향로를 받쳐 든 비천상 · 사진 Josep Panadero, CC BY-SA 4.0, 위키미디어 공용
  • 용뉴와 음통 — 종을 매다는 고리는 용머리 모양이고, 그 옆에 대롱 모양의 음통이 있어요. 음통은 우리나라 종에만 있는 독특한 구조예요. 소리를 거르는 필터라는 연구도 있지만,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어요.
  • 유곽과 유두 — 어깨 아래 네 곳의 네모난 칸(유곽)마다 연꽃 봉오리 모양 돌기가 9개씩, 모두 36개 있어요.
  • 비천상 — 연꽃 방석에 무릎을 꿇고 향로를 받쳐 든 천인이 네 곳에 새겨져 있어요. 옷자락과 보상화 구름이 하늘하늘 휘날려, 한국 비천상의 대표로 꼽힙니다.
  • 당좌 — 종을 치는 자리로, 여덟 잎 연꽃 모양이에요.
  • 여덟 번 굽이진 입 — 종 아랫단이 꽃잎처럼 여덟 번 굽이져요. 다른 종에서는 보기 힘든 이 종만의 특징입니다.

‘웅~ 웅~’ 맥놀이의 비밀

에밀레종 소리를 들어 보면 “웅~” 하고 커졌다가 작아지고, 다시 커지기를 되풀이해요. 이것을 맥놀이라고 합니다. 종 두께와 무늬가 아주 조금씩 고르지 않아서 하나의 울림이 아주 가까운 두 소리로 갈라지고, 두 소리가 겹치면서 커졌다 작아지는 거예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기본 소리는 약 65Hz이고, 약 3초마다 소리가 부풀었다 잦아듭니다. 맑은 첫소리 뒤로 낮은 울림이 1분 넘게 이어져요.

종 아래 바닥이 둥글게 파인 자리는 명동이에요. 우리나라 종 아래에는 항아리를 묻거나 땅을 우묵하게 파서 소리를 더 깊게 울리게 했어요.

에밀레 전설, 사실일까?

이 종에는 슬픈 전설이 따라다녀요. 종을 만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자 시주로 받은 아기를 쇳물에 넣었고, 그 뒤로 종이 “에밀레(어미 탓에)” 하고 운다는 이야기예요.

하지만 과학은 다른 답을 내놓았어요. 1998년 국립경주박물관이 성분을 분석해 보니 구리 약 85%, 주석 약 14%였고, 사람 뼈에 들어 있는 인(P)은 전혀 나오지 않았어요. 『삼국유사』나 고려·조선의 옛 기록에도 아기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 전설은 19세기 말 외국인 선교사의 기록에 비슷한 이야기가 처음 보이고, 일제강점기 신문·잡지와 1943년 희곡, 1960년대 영화 〈에밀레종〉을 거치며 이 종의 이야기로 굳어진 것으로 봐요. 그러니 에밀레종의 깊은 울음은 아기의 울음이 아니라, 1,250년 전 신라 장인들의 뛰어난 솜씨가 낸 소리예요.

22년 만에 다시 울린 종

에밀레종은 1992년 제야의 종을 끝으로 정기 타종을 멈췄어요. 그 뒤 1996년과 2001~2003년에 조사를 겸해 울렸고, 2003년 개천절 타종이 마지막 공개 타종이었습니다. 종을 지키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2025년 9월, 국립경주박물관은 5년 동안 이어질 정기 타음 조사를 시작하며 22년 만에 시민 앞에서 종을 울렸어요. 신청자 가운데 종이 완성된 해를 따 771명을 뽑아 초대했다고 해요. 2026년 1월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종소리의 주파수와 맥놀이는 예전 측정과 거의 같아, 종이 건강하게 잘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2026년 9월에도 두 번째 공개 타종이 열렸어요.

소원법당에서 듣는 에밀레종 소리

소원법당 마당 종각의 십이지 종
소원법당 마당 서쪽 종각의 십이지 종 · 📷 소원법당에서 찍은 사진

소원법당의 십이지 종은 모두 에밀레종 소리로 울려요. 종을 누르면 당목이 종을 치듯 흔들리며 2025년 타음 조사 때의 실제 에밀레종 소리가 납니다. 정각에는 시각만큼, 30분에는 한 번 범종이 울리고, 그때도 같은 에밀레종 소리예요. 맥놀이를 느끼려면 이어폰을 끼고 한 번 쳐 본 뒤 끝까지 귀 기울여 보세요. “웅~ 웅~” 하고 숨 쉬듯 이어지는 울림이 들릴 거예요.

🔔 소원법당에서 종 쳐 보기

참고한 자료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정보 ‘성덕대왕신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덕대왕신종’·’범종’ · 경주시 웹진 「경주이야기」 이채경 학예연구관 글 · 윤두병·김양한(1997), 강형태 외(2004) 논문 · 매일신문(2025.9.24) · 뉴시스(2026.1.12) · 한겨레(2026.9.15) · 중앙일보 칼럼 ‘에밀레’ · 서울신문(2015.7.8)
※ 크기와 무게는 국가유산청 공식 수치예요. 종에 새긴 글자 수는 세는 방법에 따라 830자~1,050자로 달라 ‘천여 자’로 적었어요.
※ 법당 종소리: 성덕대왕신종 타음(국립경주박물관 2025 타음 조사, 경주신문 영상).
※ 사진: Bernard Gagnon (CC0), Josep Panadero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 위키미디어 공용, 크기만 줄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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